유동성 위기 시대, 법인회생 제도의 현대적 의미 - 이정엽 대표 변호사

법인 회생
글쓴이 이정엽 대표 변호사 2026-08-13 조회 16

유동성 위기 시대, 법인회생 제도의 현대적 의미

이정엽 변호사(법무법인 로집사)


기업 부실은 빨라지고

회생·파산 신청, 사상 최대 수준

법인회생은 패배 선언 아닌

위기별 해법을 고르는 경영전략




기업의 유동성 위기는 더 이상 일부 한계기업의 이야기가 아니다. 작년 2025년 기업회생 신청은 1196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21.5% 증가해, 전년도 연간 최고치였던 1094건을 이미 넘어섰다. 기업파산 신청도 같은 기간 2000건을 넘기며 2024년 연간 최고치 1940건을 웃돌았다. 한국은행 역시 2024년 한계기업 비중이 전체 기업의 17.1%로 2010년 이후 최고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중소기업의 한계기업 비중은 약 18%에 달했고, 3년 이상 한계상태가 지속된 기업도 44.8%에 이르렀다.


부실 징후는 업종별로도 뚜렷하다. 금융감독원의 2025년 정기 신용위험평가에서는 채권은행들이 221개사를 부실징후기업으로 선정했고, 업종별로는 부동산업 38개사, 자동차 16개사, 도매·상품중개 15개사, 기계·장비 12개사 등이 포함됐다. 고금리, 소비 둔화, 공사비 상승, 프로젝트파이낸싱 경색, 매출 회복 지연이 겹치며 기업의 현금흐름은 빠르게 말라가고 있다.


유동성 위기 시대에서 많은 회사들이 법인회생을 ‘마지막 수단’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실제 법인회생은 기업이 완전히 무너진 뒤 선택하는 절차가 아니라, 아직 영업가치가 남아 있을 때 채무, 영업, 투자자, 금융기관, 협력업체 문제를 한꺼번에 정리하기 위한 제도다. 유동성 위기 기업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손실 자체보다 시간의 상실이다. 급여가 밀리고, 매입처 결제가 지연되고, 금융기관의 기한이익 상실 통보가 시작되면 기업가치는 하루 단위로 훼손된다. 그때 필요한 것은 막연한 버티기가 아니라 법적 보호 아래 이해관계자를 설득할 수 있는 구조다.


법인회생의 기본 기능은 명확하다. 채권자의 강제집행을 멈추고, 회사가 계속 영업할 수 있는 틀을 만들며, 회생계획을 통해 채무를 감면·출자전환·분할변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법인회생은 단순한 채무조정 절차에 그치지 않는다. 기업의 위기 단계와 채권자 구성, 투자자 유무, 영업 지속 가능성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도구가 훨씬 다양 해졌다. 바로 pre-ARS, ARS, 하이브리드 구조조정, 인가 전 M&A, DIP 금융이다.




‘pre-ARS((Autonomous Restructuring Support Program)’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기업은 먼저 서울회생법원에서 처음 도입한 ‘pre-ARS((Autonomous Restructuring Support Program)’제도를 고려할 수 있다. pre-ARS제도는 회생절차를 신청하기 전에 법원의 조정 기능을 활용해 채권자와 비공개로 사전 협상을 시도하는 방식이다. 회생신청이라는 공식 낙인이 찍히기 전, 법원의 관여 아래 주요 채권자와 채무조정 합의를 모색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정식 회생 절차보다 신속하고 유연하게 채권단과 변제 기일 연장, 이자율 조정 등 합의를 도출할 수 있다. 합의가 되면 조정 내용에 따라 변제를 이행하고, 합의가 어렵다면 회생절차, 워크아웃, 하이브리드 구조조정 등으로 전환할 수 있다.


‘ARS(Autonomous Restructuring Support Program)’


다음은 ‘ARS(Autonomous Restructuring Support Program)’, 즉 자율 구조조정 지원 프로그램이다. ARS는 pre-ARS와 다르게 일단 법원에 회생절차 개시신청서를 제출한다. 그러나 법원은 곧바로 절차를 개시하지 않고, 일정 기간 개시 결정을 보류한 채 회사와 채권자가 자율협상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이다. 보전처분과 포괄적 금지명령으로 개별 채권자의 강제집행을 막고, 회사는 영업을 계속하고 채권자와 채무조정안을 협의할 수 있다. 서울회생법원 자료에 따르면 2018년 ARS 도입 이후 2024년 말까지 34건이 신청됐고, 그중 15건은 채권자 협의 등을 통해 회생신청을 취하했다.


ARS의 대표적 의미를 보여준 사례가 동인광학 사건이다. 동인광학은 ARS를 신청해 채권자들과 협의했으나 자율협약 자체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협의 과정에서 담보채권자의 과반 동의를 확보했고, 이를 바탕으로 사전계획안, 이른바 P-Plan 방식의 회생계획안을 제출했다. P-Plan은 법원에 회생을 신청하기 전, 부채의 절반 이상을 가진 채권자와 미리 구조조정(채무조정) 계획을 합의하여 진행하는 패스트트랙(Fast-track) 제도이다. P-Plan의 핵심 장점으로는 1~2년 가량이 소요되는 통상 법인회생과 달리 회생 절차를 3~6개월 이내로 신속하게 끝낼 수 있다. 실제 동인광학 사례에서도 법원은 회생계획안 제출기한을 개시결정일로부터 24일 후로 지정하여 단시간 안에 정상 기업으로 복귀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동인광학 서울회생법원 보도자료(클릭)


‘하이브리드 구조조정’


‘하이브리드 구조조정’은 말 그대로 사적 구조조정인 워크아웃과 법인회생의 장점을 결합하는 방식이다. 워크아웃은 금융채권자 중심의 자율협약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모든 채권자에게 법적 구속력을 미치기 어렵다. 반대로 회생절차는 강력한 법적 효력이 있지만, 절차 진행에 시간이 소요되고, 원칙적으로 엄격한 법적 요건에 따른 채권자의 동의를 받아야만 회생계획안이 인가될 수 있다. 하이브리드 구조조정은 두 제도를 병행해, 법원은 강제집행을 막고 영업 계속을 보호하며, 금융채권자들은 워크아웃 방식으로 만기연장, 이자 조정, 신규자금 지원 등을 논의할 수 있게 한다. 워크아웃 제도를 통해 기촉법상 기업개선계획 이행약정이 의결된 경우 회사는 회생신청을 취하하고 기업개선계획을 이행하게 된다. 반면 기업개선계획 이행약정이 의결되지 않을 경우 회생절차를 계속 진행하게된다.


부동산 경기 침체와 PF 부실이 겹친 기업, 즉 채권단이 대부분 금융기관인 경우 이 방식이 특히 의미 있다. 실제로 2025년 국내 모 시행사는 PF 자금조달 실패, 브리지론 이자 부담, 공사비 미지급, 강제집행 압박으로 회생을 신청하면서 ARS를 활용했고, 법원의 보전처분과 포괄적 금지명령 아래 주요 채권자들과 금리 조정, 만기연장, 공사비 조정 등을 협의해 종국적으로 회생절차를 취하하고 하이브리드 구조조정을 통해 재정 위기를 극복한 바 있다.


‘인가 전 M&A’


위기 기업이 필요한 것이 단순한 채무감면이 아니라 신규 자금이라면 ‘인가 전 M&A’가 해법이 될 수 있다. 인가 전 M&A는 회생계획 인가를 기다리지 않고 회생절차 중 조기에 인수자를 찾고, 인수대금으로 채무 변제와 운영자금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채권자 입장에서는 회사가 청산되는 경우 보다 높은 변제율을 기대할 수 있고, 회사 입장에서는 영업망과 고용, 협력업체 관계를 보전할 가능성이 커진다.


쌍용자동차 사례가 대표적이다. 쌍용자동차는 회생절차 중 KG그룹 컨소시엄과 M&A 계약을 체결했고, 법원은 KG그룹 컨소시엄의 M&A를 골자로 한 회생계획안을 인가했다. 당시 쌍용자동차의 부채는 약 1조 5,000억 원 규모였는데, KG그룹은 인수대금으로 회생담보권 전액(약 8,350억 원)은 변제하고, 무담보 회생채권 및 상거래채권은 원금의 약 6.8%~44.2% 수준으로 삭감·조정하여 나머지는 주식 전환 및 현금 변제 방식으로 쌍용자동차의 부채를 해결하고 회사를 인수하였다. 당시 법원은 쌍용자동차가 회생절차에서 M&A를 추진해 신규 자금 유치에 성공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 회사와 근로자, 협력업체가 계속 존속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주었다.


‘DIP 금융’


마지막으로 ‘DIP 금융’을 빼놓을 수 없다. DIP(Debtor In Possession)는 기존 경영자가 회생절차에서 계속 회사를 운영하는 구조를 말하며, DIP 금융은 회생기업이 영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공급되는 운영자금이다. 민간 금융기관을 통해서도 DIP 금용을 지원받을 수 있지만, 주로 캠코와 같은 정책금융기관을 통한 지원이 주를 이룬다. 아무리 회사의 미래 가치가 좋아도 지금 당장 원재료를 살 돈, 임금을 지급할 돈, 납품을 이어갈 돈이 없으면 회사의 미래는 무위에 그친다. 그래서 위기 기업에는 채무조정만큼이나 ‘절차 중 현금’이 중요하다. 캠코는 2024년 4월 기준 164개 회생기업에 1,765억원의 DIP 금융을 공급했고, 40개 기업에 대해서는 1,987억원 규모의 채무조정을 지원했다. 2026년에는 캠코 기업지원금융에 추가 출자를 통해 회생기업 대상 DIP 금융을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회생은 부도를 인정하는 절차가 아니라, 부도가 파산으로 번지기 전에 질서를 만드는 절차이다. 유동성 위기 기업이 가장 먼저 잃는 것은 돈이 아니라 신뢰다. 금융기관은 만기연장을 꺼리고, 협력업체는 선결제를 요구하며, 직원은 이탈을 고민하고, 거래처는 주문을 줄인다. 이때 경영자가 “조금만 더 버티자”고 말하는 순간, 회사의 협상력은 오히려 줄어든다.


반대로 법인회생을 적시에 선택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채권자별로 흩어진 압박을 법원이라는 하나의 테이블로 모을 수 있다. 자율협상이 가능한 회사는 pre-ARS나 ARS를 통해 낙인을 줄이며 시간을 벌 수 있다. 금융채권자 중심의 조정이 필요한 회사는 하이브리드 구조조정을 검토할 수 있다. 새 투자자가 필요한 회사는 인가 전 M&A를 통해 생존자금을 유치할 수 있다. 영업은 가능하지만 당장 운전자금이 부족한 회사는 DIP 금융을 활용할 수 있다.


기업 구조조정의 성패는 ‘얼마나 망가졌는가’보다 ‘언제 움직였는가’에 달려 있다. 회생을 늦게 신청한 회사는 선택지가 줄어들 수 있다. 오늘날의 법인회생은 단순히 빚을 깎는 절차가 아니다. 위기에 맞는 제도를 조합해 기업가치를 보전하고, 채권자 손실을 줄이며, 고용과 거래망을 지키는 종합 구조조정 플랫폼이다.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기업이 법인회생을 두려워해야 할 이유는 없다. 두려워해야 할 것은 회생이라는 선택지를 검토하지 않은 채 골든타임을 흘려보내는 일이다. 위기의 기업에 필요한 것은 체면이 아니라 시간이고, 시간은 제도를 아는 기업에게만 남는다.



이 칼럼과 관련된 자주 묻는 질문(FAQ)

Q. 법인회생은 무엇이며 유동성 위기 기업에 어떤 도움을 주나요?

A. 법인회생은 채권자의 강제집행을 멈추고 회사가 계속 영업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 회생계획을 통해 채무를 감면·출자전환·분할변제하는 제도로, 완전히 무너진 뒤의 패배 선언이 아니라 남아있는 영업가치를 보전하면서 채무·영업·투자자·금융기관·협력업체 문제를 정리하는 제도다. 오늘날에는 전통적 채무조정 외에도 pre-ARS(회생신청 전 법원의 비공개 사전협상), ARS(회생절차 개시 결정 보류하에 법원이 자율협상을 지원; 2018년 도입 이후 2024년 말까지 34건 신청·15건 취하), 하이브리드 구조조정(워크아웃과 회생의 장점 병행), 인가 전 M&A(조기 인수로 신규자금 조달·쌍용자동차 사례), DIP 금융(회생절차 중 운영자금 제공; 캠코는 2024년 4월 기준 164개 회생기업에 1,765억원의 DIP 금융을 공급하는 등)을 상황에 맞게 조합해 시간과 기업가치를 보전하고 채권자 손실을 줄이며 고용과 거래망을 지키는 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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