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격적으로 기업 회생 절차를 진행하다 보면, 회생 인가가 불확실한 상황에 직면하고, 이때 법인 파산도 함께 준비해야 하는 건 아닐지 고민이 깊어지는 순간이 오기도 합니다. 특히 ① 담보권자인 은행이 이자율 협상에서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거나, ② 임금, 퇴직금, 조세 채권 등 공익채권 규모가 커서 당장의 현금 흐름이 빠듯한 경우, ③ 회생계획안 가결을 위한 관계인집회 일정이 가까워지는데 채권자 동의율 확보가 불투명한 경우 등에 '법인 파산' 카드를 고민하게 됩니다. 수 년 간 관리위원으로 실무를 처리하면서 이런 기로에 선 기업들을 적지 않게 봐왔고, 그 결과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회생 절차를 진행하면서 파산 가능성을 동시에 대비하는 것은 가능할 뿐 아니라, 오히려 현명한 리스크 관리 전략이라는 점입니다. 다만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집니다.
'법인 회생'과 '법인 파산'을 동시에 준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먼저 오해부터 짚어드리면, 법인 회생과 법인 파산을 동시에 준비한다는 것은 두 절차를 한번에 신청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회생 절차는 그대로 진행하되, 회생 인가가 부결될 경우를 대비하여 '법적·실무적 준비'를 병행한다는 의미입니다.
아래 '체크리스트'를 먼저 확인해 주세요.
- 회생 기간 중 이루어진 자산 처분, 변제, 계약 해지 등이 파산 전환 시 문제가 될 수 있는지 사전에 점검할 것
- 파산 절차에서 직원들의 임금 채권이 어떻게 보호되는지 확인하고 이에 맞게 급여 지급 방식을 조율할 것
- 사업의 핵심 자산이나 운영 구조를 파산 후에도 합법적인 방식으로 보전 내지 처분 할 수 있는지 검토할 것
- 파산 신청 시 필요한 서류와 예납금, 법무 보수 등 절차 비용을 미리 준비해 둘 것
기업 회생 인가 가능성이 낮은지 어떻게 판단하나요?
법인 회생 중 법인 파산을 고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인가 가능성 불투명'에 있습니다. 회생계획안 부결 가능성에 대한 신호(signal)는 여러 형태로 나타납니다.
주요 담보권자(금융기관 부동산 담보 대출 등)가 이자율 협상에서 강경한 입장을 유지할 때
채권자 집회에서 회생담보권자 조의 가결 요건인 의결권 총액의 4분의 3 이상을 충족하기 어렵다면, 인가 가능성에 의문이 생깁니다.
공익채권 규모가 커서 회생 담보권자나 회생 채권자에게 이자 등 변제 할 여력이 없을 때
임금, 퇴직금, 조세채권 등 공익채권을 모두 충당하고 나면 남는 현금이 없어 회생 담보권자들에게 이자를 지급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은행과 같은 담보권자 조의 동의를 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관계인집회 일정이 임박했는데 협상이 제자리일 때
회생계획안 가결을 위한 관계인집회는 보통 회생계획안 제출 후 한두 달 이내에 열립니다. 관계인집회 기일이 가까워지는데 은행 등 주요 채권자와의 협상이 진전 없이 제자리걸음이라면, 대비책으로 파산 준비를 서두를 필요가 있습니다.
꼭 법인 파산을 함께 준비해야 할까요?
무조건 '법인 회생 인가'만 바라보다가, 대비 없이 법인 파산으로 전환되면 예측할 수 없는 손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법인 파산 절차가 진행될 경우, 법인 회생의 기존 경영자 관리인 제도와 달리 '파산관재인'이 선임되어 파산 절차를 관장하게 됩니다. 이때 관재인은 기존의 회생 절차 전체를 소급하여 검토합니다. 회생 기간 중 이루어진 변제, 자산 이전, 계약 해지 등이 '편파 변제'나 '사해행위'에 해당하는지 면밀히 조사하게 됩니다. 특히 어떤 채권자에게, 언제, 얼마를 변제했는지에 대한 현금 흐름 기록은 조사 초기에 가장 먼저 들여다보는 항목입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법인 파산 절차를 진행하게 되면 기존 회생 절차 중 진행했던 행위들이 문제가 될 수 있고, 나아가 대표 등 기존 경영진의 법적 리스크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사전에 법인 파산 전환을 대비하여 회생 절차 중의 행위들을 투명하게 관리해두면 파산 전환 시에도 법적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절차를 훨씬 원활하게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또한, 법인을 청산 시키는 파산 절차는 법인 회생 절차와 비교하여 준비해야 할 서류와 확인 사항이 다릅니다. 법인 파산 신청 전에 정리해두어야 할 항목들을 미리 파악해둔다면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법인 파산 실무 대비책
직원 임금 지급 방식을 미리 점검하세요
파산으로 전환되면 직원들의 미지급 임금은 재단채권으로 분류되어 최우선 변제 대상이 됩니다. 체불 기간이 길고 금액이 큰 경우에는 근로복지공단의 대지급금(체당금) 제도를 통해 일부를 보전받을 수 있는데, 이 제도는 신청 요건과 상한액이 정해져 있어 미리 확인해두지 않으면 막상 필요한 시점에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회생 절차 중 CRO나 관리위원의 지시로 당월 급여만 지급하고 기존 체불 임금은 미지급 상태로 두고 있다면, 파산 전환을 고려할 경우 지급 방식을 조정하는 것이 직원 보호 측면에서 유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부분은 법률대리인과 먼저 상의하고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회생 기간 중 이루어진 행위들을 점검하세요
법인 회생 절차 중에 자산을 처분하거나, 특정 채권자에게 변제를 집행하거나, 계약을 해지한 사례가 있다면 파산 전환 시 해당 행위들이 부인권 행사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준비 없이 파산으로 넘어갔다가 과거 행위들이 문제가 되면, 기존 경영진이 직접 법적 책임을 지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기업 회생 절차 중이라도 언제든지 전문가를 통한 사전 점검이 가능합니다.
법원 관할과 법률대리인을 미리 검토하세요
법인 회생 절차를 지방 법원에서 진행했다고 해서 법인 파산도 반드시 같은 법원 신청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법인 파산 실무는 법인 회생과 결이 다른 부분이 많아, 해당 절차에 경험이 풍부한 대리인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법인 회생 중 파산을 고려 중이라면 해당 경험이 풍부한 법률 대리인을 선임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수임료보다 중요한 것은 대표자의 리스크를 제대로 방어할 수 있는지 입니다. 법인 파산 절차가 시작되면 법인 내 모든 재산은 파산관재인의 관리 아래 놓이고, 그 이후에는 대표자가 능동적으로 대응하거나 결정할 수 있는 폭이 크게 줄어들게 됩니다.
실무 제언
법인 회생과 법인 파산은 단순히 "살리느냐, 정리하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경로로 가느냐에 따라 대표자를 포함한 경영진의 법적 리스크, 직원 보호 수준, 채권자와의 관계, 사업 재개 가능성이 모두 달라집니다. 따라서 두 가지 경로를 동시에 놓고, 각각의 시나리오에서 어떤 결과가 예상되는지를 법인 회생과 파산 모두에 능통한 전문가와 함께 분석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접근입니다.
관계인집회까지 시간이 남아 있다면 지금이 바로 준비를 시작할 적기입니다. 회생계획안이 인가를 목표로 준비하시되, 법인 파산으로 절차를 전환하더라도 준비된 상태에서 맞이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결과에서 큰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법인 회생과 법인 파산 사이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계신다면, 먼저 전문가와 함께 두 시나리오를 놓고 따져보시기를 바랍니다.